고향의 맛을 전하는 북한 명태, 청정하모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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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매일


도정 씨는 동해 바닷가 마을인 경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체 조건이 뛰어났던 그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여자 축구 선수로 뛰었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훈련을 하고, 방과 후에도 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축구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도정 씨는 졸업 후 프로 입문 시기가 다가오며 축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프로에 입단한 선배들이 해외 경기를 다녀온 후 노동단련대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어요. 그래서 축구를 그만두고 군 장교가 되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셨죠. 제게는 세 명의 남동생과 병든 어머니가 있었어요. 결국 저는 돈을 벌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가족을 위해 중국행을 선택했지만, 도정 씨에게 중국에서의 10년은 괴로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중국 공안을 피해 다니며 강제 북송의 두려움과 싸워야 했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태어난 아들은 선천성 심장병에 걸렸습니다. 그나마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중국에서 노점상을 하며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중국 생활에서 유일한 소득이었습니다.




어느 날, 도정 씨에게 우연히 한국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먼저 탈북한 조카가 도정 씨에게 연락한 것이었습니다. 조카의 소개로 한국행을 결심한 도정 씨는 200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그녀였지만, 정착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고향과 중국에 두고 온 가족과 자식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도 있었지만, 남한 사람들과의 문화적 차이와 편견을 극복하는 것 또한 오로지 저의 몫이었어요. 정착 초기 돈이 없어 3일 동안 굶은 적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식당 주인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해서 열흘 만에 잘린 경험도 있어요. 지금은 이렇게 덤덤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날마다 지옥이고 한숨뿐이었죠.”




그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도정 씨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의 따뜻한 지원 덕분에 도정 씨는 중국에서 아들을 데려오고, 두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지만, 남편이 갑자기 부당해고를 당하면서 가족은 졸지에 실업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도정 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돈을 벌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템이 바로 명태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동해 바닷가 근처에서 생선을 먹으며 자란 저는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며 명태를 조금씩 말려 먹곤 했죠. 가끔 제가 말린 명태를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었는데, 그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제 명태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마침, 새로운 일이 필요하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주셔서 전 재산을 털어 명태 사업을 시작했죠.”




한국에서 흔히 불리는 황태는 북한에서는 명태로 불립니다. 각각 북한 명태는 생물 명태를, 남한 황태는 냉동 명태를 건조한 것을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바다에서 갓 잡은 생태를 바닷물에 씻어 건조하여 명태를 만들기 때문에 북한 명태는 맛있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납니다. 반면 남한 황태는 러시아산 동태를 세척하여 건조하다 보니 해동 시 바닷물 향과 육질이 파괴되어 살이 퍽퍽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남한에서 잘 알려진 황태로 판매하면 더 쉬울 텐데 왜 명태라고 고집하냐고 물어보세요. 그때마다 저는 황태가 아니라 명태를 생산한다고 해요. 대한민국에 흔한 황태는 제 고향에서 먹던 명태와 너무 다른 맛이기 때문이죠.”




생태가 없는 남한에서 생태의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도정 씨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느 해는 겨울임에도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잘 건조되던 명태에 구더기가 생겨 모두 폐기해야 했고, 저장 창고가 없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보관한 명태가 여름 장마로 곰팡이가 생겨 폐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반복된 실패로 빚만 늘고 실망과 악제만 겹쳐 도정 씨는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졌지만, 시어머니의 따끔한 한마디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빈손으로 와서 그만한 학비도 안 내고 공짜로 돈을 벌려고 했느냐? 그리고 네가 낳은 자식들 네가 책임져라, 죽으려 마음먹었으면 같이 죽어. 그렇죠! 저는 100억을 벌고 싶었는데, 1억 8천만 원 빚 때문에 내 목숨과 내 자식들의 앞길을 불행하게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한심하고 억울해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도정 씨는 마침내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명태 브랜드, ‘해숨 청정 명태’를 만들어 냈고, 지역 주민들과 고향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고자 청정하모니 협동조합도 시작했습니다. 농번기 이외의 시기에 지역주민들은 청정하모니에서 명태를 만들며 수입을 창출합니다. 또한, 북향민 출신 직원을 채용하여 함께 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기업이지만, 그래도 저한테는 희망과 꿈이 있어요. 대한민국 국민들이 명태를 즐겨 먹는 그날까지 고향 특산물 명태를 널리 알리고, 앞으로 더 많은 이웃을 돕고 사랑할 수 있는 기업인이 되고 싶어요. 저의 도전을 임팩트기부로 응원해 주세요!”






고향의 맛을 전하는 북한 명태, 청정하모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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